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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축을 받아서라도 제 발로 걸을 수 있던 르네가 무너져 내린 것은 교실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어젯밤부터인가 이마가 좀 뜨겁기야 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멀쩡히 잘 걸어 다니길래 별문제 없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르네, 많이 안 좋아? 숨쉬기 힘들면 말해줘. 그렇게 묻는 말에 르네는 벤의 셔츠 옷깃을 약하게 잡아당기며 대답했다. 괜찮아, 혹시 보건실까지만 좀 데려다줄 수 있어? 물론 그것은 딱히 어렵진 않은 일이었기에.
힘들면 말 안 해도 돼, 한숨 자.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서, 등에 업힌 르네가 그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업히자마자 기절하듯 잠에 빠져드는 것과 들었음에도 대답할 기력이 남아있지 않은 것― 어느 쪽이 더 나쁜 상태를 암시할까. 그런 무의미한 추측보다 더 직접적으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등에 닿아오는 체온이었다. 부축할 때는 팔과 어깨 정도만 닿아 있어서 몰랐는데, 업고 있으니 사람 몸이라기엔 심상치 않은 뜨거움이 삽시간에 몸을 덥혀왔다. 가는 길에 거슬리는 책걸상을 몇 개쯤 넘어가며 조금 걷다 보니 절로 더워져서 땀이 흐를 만큼.
느리게 내뱉어지는 날숨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옅은 숨이라도 같은 자리에 계속 맞부딪혀 오면 서서히 물방울이 맺히는 것처럼. 처음엔 거의 의식하지 않았던 호흡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마도 르네의 무게를 계속 감당한 채로 걷다 보니, 체력이 슬슬 바닥을 드러냄에 따라 감각이 예민해진 것이겠지만. 내딛는 발걸음에 실리는 부하가 갈수록 심해져 갔다. 민감한 목덜미가 제법 신경 쓰이긴 했지만, 숨소리가 약하게 느껴지는 것보다야 나았다.
아직 단순한 열병으로 보이는 증상에 갖다 대기에는 너무 비관적인 직감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오류인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오류를 해결하는 첫걸음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오류의 발생을 아예 막아주지는 못하니까.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감정에 얼마나 강하게 휘둘리는지··· 신체는 의식 상태가 어쩌고 있든 간에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너에게도 나에게도 신체가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반복적인 숨소리― 그 존재 자체에는 감사하지만, 인지하면 할수록 무수하게 생겨나는 오류는 걷잡을 수 없이 쌓여가고.
그러한 감정의 문제는 신체와 완전히 별개로 작동할 수 없기에, 쌓인 오류를 해명하는 것은 적어도 르네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은 이후가 되어야 할 듯싶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눕혀놓으려 했음에도 며칠간 제대로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탓에 힘이 빠져서인지, 내려놓는 순간 녹슨 침대가 묵직하게 흔들리는 소리. 의성어로 표현하자면 덜컹, 인지 삐걱, 인지 알 바도 아니고 제대로 들을 여력도 없었지만, 중요한 건 그 소리가 맥을 탁 풀어버리며 줄곧 참아왔던 숨이 급하게 내쉬어졌다는 점에 있겠다. (언제부터 쓸데없이 숨을 참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대로 알 수 있는 게 없는 지금 상황에서야 그 정도는 사소한 오류로 치부하고 넘어갈 만하다.)
떨리는 손을 뻗어 보건실 서랍이나 찬장을 되는대로 뒤졌지만, 남아 있는 약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약뿐만 아니라 이제는 남아 있는 사람도··· 아마 초기에 나타난 증세를 단순한 열병으로 착각한 학생들이 아무 효과도 없는 약을 열심히 찾아 먹었을 것이다. 효력을 기대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러는 건 다가오는 확실한 죽음 앞에서 그것 말고는 도저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겠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 심리다. 비록 그 때문에 지금 르네한테 줄 약이 남아 있지 않다고는 해도.
원래도 몸이 좋지 않은 르네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일종의 기적이라 불릴 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벌어질 일은 결국 다 벌어지게 되어있으니까. 지구의 자전이나, 사람의 죽음이나, 세상의 멸망처럼··· 물론 당장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지만, 옅은 숨이나마 분명히 붙어 있는 네 존재는 몇 번이고 들이닥칠 뻔했던 멸망을 끝없이 내일로 유보하고. 치사율 백 퍼센트에 달하는 병이 세상을 집어삼킨 지 오늘로 이십삼 일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