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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벸홉
    순철논 2026. 1. 12. 23:50


     싸한 맛이었다. 기억하기로는 처음부터 그랬다. 몇 번쯤은 아닐 때도 있었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의 기억은 강하게 남는 법이다. (처음이니 하는 감상적인 표현을 쓸 생각도 없었고, 그런 걸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 이후로도 그 남자는 종종 그 처음을 상기시키는 경험을 선사했다. 별로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제집처럼 상주하는 실험실, 그 안쪽 서랍에 사탕 한 꾸러미가 있음을 안다. 그는 무언가를 입에 넣고 굴리는 행위로써 환기해 보겠다는 심산인지, 꾸준하게도 흰색 박하사탕을 집어 먹곤 했다. 맛이 화해서 잠이 깨··· 제법 좋아. 특유의 나른한 톤으로 사탕을 집어 건네던 모습. (물론, 홉스는 그 사탕을 한 번도 받아먹지 않았다)

     마치 지나가다 문득 생각나서 가볍게 들른 듯한 행색, 벗어 보인 고글이 겸연쩍어서인지 충동적으로 맞닿은 입술― 그 모든 것이 계획에 없던 일인 것처럼 위장한다 해도, 입안에 남아있는 박하사탕의 싸한 맛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실험실을 나서며 사탕을 물고 왔겠지. (의도를 눈치챈다 해도 큰 의미는 없다. 그다지 열심히 위장하려 한 것도 아닐 테니까)

     앉아 있는 데서 일어나려 하면 한 손으로 느긋하게 어깨를 잡아 누르며, 마치 네가 할 일은 거기 가만히 앉아 있는 것뿐이고 자기는 내키는 대로 다가왔다가 원할 때 마음대로 돌아 나가겠다는 듯― (명백히, 건방진 행동이었고, 얼마든지 용인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처럼,)

     박하사탕의 싸한 맛 위로 알 수 없는 비릿함이 녹아들었다. (익히 알고 있는 맛이다. 미숙하던 시절, 가끔가다 무리할 때면 종종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을 타고 흐르던)

     그리 강하지 않은 세기로 어깨를 붙잡고 밀어내는 것이 느껴진다. (밀어내려는 의도가 맞긴 한 건가?)

     천천히, 그는 눈을 뜬다. (놀람 등의 감정 변화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상황을 눈으로 보고 파악하고자 하는 심리에서― 성급하진 않으나 반쯤 무의식적인 행동. 지금 눈을 뜨면 그와 눈이 마주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마지막 수면은 언제였습니까?”
     “내가 기억 안 할 걸 알잖아.”
     “질문하는 이유가 꼭 대답을 듣기 위해서만은 아니지요.”
     “그게 아니면 뭐··· 눈치라도 주는 건가?”

     불과 오 분 전의 대화. 가벼운 한숨과 함께 대답을 유보하는 홉스를 앞에 두고, 그 남자는 제멋대로의 해답이랄 것을 찾아 몇 단어를 입안에서 굴리기 시작했다.

     “눈치가 아니면 혹시 협박이라든가.”

     이것은 평소에 홉스가 생각하는, 정답에 가장 가까운 답변.

     “걱정? ···일 리는 없겠고.”

     이것은 반대로 그 어떤 상황에서든 정답이 되지 않을 법한 답변.

     “아니면 그런, 제대로 된 대답도 못 들을 말을 나한테 묻는 게 일종의 습관이 되어버린 건···”

     ···이것은,

     “당연히 아니겠지! 하하.”

     그리고 마주친 눈.

     다크서클이 뚜렷한 안색과 피로 범벅이 된 얼굴. 당장 코피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몇 분 내로 쓰러져서 실려 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몰골. 홉스는 방금보다 조금 더 진심의 비중이 커진 한숨을 내쉬며 손수건을 내밀었다. 닦으시죠, 하고 쏘듯이 내뱉은 말이 제 귀에는 의도한 것보다 더 냉랭하게 들렸다. 그전까지 제법 귀하게 다루던 손수건이었으나, 그것을 집어 건넬 때까지는 의식하지도 않고 있었다.

     서둘러 방을 나서는 와중에도, 프랜시스는 제 웃는 얼굴을 홉스의 시야에 각인시키길 잊지 않았다. 코에서 흐르는 피는 급하게 틀어막긴 했으나 그리 재빠른 처사는 아니었던 탓인지. 제3자가 들어와서 본다면 무리 없이 사건 현장으로 보일 법한 꼴이었다. 우선 제 옷에 묻은 것이라도 어찌 수습해 볼 생각으로 손수건을 찾다가, 이미 손에 쥐여서 보내버렸음에 생각이 닿는다. 그가 나름대로 아끼던 손수건은 지금쯤 피로 엉망이 되어 더 쓸 수도 없을 지경일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니···

     한숨 대신에 가볍게 지어지는 미소. 그는 떠오르는 잡생각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었다. 비릿함에 눌려 미뢰 속 깊숙한 어딘가로 찾을 수 없도록 침잠하는 싸한 맛― 그 처음의 기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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