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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글내문] Semper apud te순철논 2025. 10. 2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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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https://www.postype.com/@tractatus-amor-philo/post/20515158
Semper apud te: 上: <순정철학논고> 덕질 창고
“앤, 고생 많았어!” “그리고 생일 축하해~!” 리케이온을 졸업하고 8년이라는 세월이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갔다. 몇 달 전, 이제는 콘웨이 자작부인이 된 앤이 첫 아이를 낳았다. 태어나기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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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캔터피(@xssthedream)님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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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큰 병원의 1인실. 중앙에서 살짝 오른편에 침대가 놓여 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인물은 콘웨이 자작부인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은 콘웨이 자작은 불안함을 겉으로 드러내지도 못할 만큼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의 눈가는 평소답지 않은 모양으로 붉게 짓물러 있다. 콘웨이 자작부인이 떨리는 손을 천천히 남편에게로 뻗다가, 중간에 힘없이 툭 떨어뜨린다. 대신 열이 오른 손으로 남편의 옷자락 대신 이불을 그러쥐며 묻는다.
우리 헤니지는?
···쉬면, 푹 쉬고 다 나으면, 그때 얘기하자.
우리 아들은 어디 있어?
제발, 앤.
당신 왜 상복을 입고 있는 건데?
다 내가 미안해, 내가 모자라서···
그러니까 왜, 뭐가 미안한 건데···
방금 전과는 다르게 기민한 동작으로 제 머리를 부여잡은 부인이 처절한 음성으로 울부짖는다. 조명이 꺼지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누구인지 모를 아이의 울음소리가 겹쳐서 소음에 가까운 음향을 만들어낸다. 오른편에 마련된 장례식장의 입구 가까이,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라는 이름이 적힌 화환이 놓여 있다.
2막
블레즈 파스칼의 사진 앞, 페르마는 그 앞에 선 채로 무어라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다. 단정한 수단 차림을 한 말브랑슈는 입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 옆에 선 아르노 역시 페르마와 비슷하게 표정이 좋지 않다.
참나, 얘는 고등학생 때도 게을러터져선, 매번 우리 뒤에 따라오더니··· 이상한 데서만 빠르고 난리야.
원래 천재는 그런 녀석들이잖아. 데카르트 좀 봐봐.
하긴, 천재들은 다 특이하지.
아하하! 그거 말 되네.
우습지도 않은 농담이 오가고,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는다. 한 차례의 웃음 뒤에 나지막한 한숨들이 지나간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더 이상 어떠한 말의 나눔도 없이 오른편의 장례식장 입구로 한 명씩 퇴장한다. 맨 뒤에 서 있던 페르마는 입구 근처에 놓인 화환 하나를 잠시 노려보다가 이내 친구들을 따라 퇴장한다.
3막
왼편에서 들것을 든 사람들이 달려 나온다.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 여자아이가 호흡기를 낀 채로 누워 있다. 중앙에서 그들의 도착을 기다리던 의사―르네 데카르트는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손을 심하게 떨며 수술 기구들을 떨어뜨린다. 옆에 있던 그의 동료가 그의 어깨를 잡아 옆으로 다급하게 밀며 대신 기구들을 집어 든다. 몇몇 사람이 더 달라붙어 아이를 옮기는 동안, 르네는 그 자리에 뿌리라도 박힌 듯 그대로 서 있다.
르네의 딸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그대로 오른편의 문을 통해 퇴장한다. 그는 딸이 다시 나오지나 않을까 기대하는 듯, 오른편의 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4막
시간은 어느 늦은 밤, 어둠 속에서 문자 메시지의 도착을 알리는 알림음이 울린다. 딱딱한 내레이션이 부고 문자의 내용을 읊는다.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라는 이름이 감정 없는 울림으로 언급된다.
여관 사장이 상주 자리에 서 있다. 왼편의 문 뒤에서 흐트러진 차림새를 정돈한 아르노와 페르마, 말브랑슈가 중앙으로 나와 상주에게 의례적인 인사를 전한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도중, 왼쪽에서 르네 데카르트가 힘없는 모양으로 비척비척 걸어온다. 셋 중 누구랄 것도 없이, 탄식하듯 그의 이름을 부른다.
르네···
···그러게, 평소에 건강 챙기라고 그렇게나 말했는데. 벤은 언제나 제멋대로네, 그렇지?
셋 중 누구에게서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허탈하게 웃던 르네는 왼편에 마련된 벤치의 끄트머리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잠깐의 정적. 페르마는 빈손으로 펜을 돌리는 시늉을 하다가 이내 손을 내린다. 양옆에서 훌쩍이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다채로운 울음소리― 암전.
5막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걸친 에드워드 콘웨이 자작이 중앙에서 조문객들을 맞고 있다. 우울한 표정의 자작 홀로 서 있는 모습은 1막에서의 구도와 거의 비슷하다. 왼편의 한구석에서, 페르마는 겉옷을 벗어 바닥에 집어던진다. 힘을 많이 실은 듯, 옷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울린다. 말브랑슈가 그를 달래려는 듯 조심스럽게 손을 뻗지만, 페르마는 그 손을 쳐낸다. 페르마가 말브랑슈를 향해 사납게 말한다.
하, 이번에도 안 온다 이거야?
피에르, 진정해···
뭘 진정하라는 거야? 됐어, 그놈은 늘 그런 식이지. 블레즈가 죽었을 때도 안 왔잖아!
바쁘다니까···
이번에까지 라이프니츠 변호할 생각은 마, 니콜라. 나도 피에르랑 같은 생각이니까.
마지막 대사는 아르노의 것이다. 아르노는 상대적으로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으나, 굳게 닫힌 입술은 라이프니츠에 대한 불만스러움을 가득 담고 있다. 불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말브랑슈는 도망치듯 다급한 동작으로 왼쪽 문을 통해 퇴장한다.
6막
어둠 속에서 착신음이 울린다. 세 번째 착신음이 울리던 도중에 뚝 끊긴다. 이어 들려오는 페르마의 목소리.
르네 데카르트가 죽었어.
수신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뭐, 알기야 알겠지. 네가 보낸 화환이 떡하니 있는데.
무대 오른편의 장례식장 입구에는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의 이름이 적힌 화환이 버티고 서 있다.
난 이제 네가 무슨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수리과가 네 친구였기는 한가.
조명이 켜진다.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가 핸드폰을 붙든 채로 중앙에 서 있다. 그는 페르마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는 모양으로, 그의 입에서는 한마디의 대답도 나오지 않는다.
어디 그렇게 좋아 죽는 일만 붙들고 얼마나 잘 사나 보자, 이기적인 놈···
해묵은 울분을 눌러 담은 페르마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전화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조명이 한 차례 꺼졌다가 켜진다. 오른편에 줄곧 놓여 있던 라이프니츠의 화환 위로 페르마의 이름이 떠오른다.
얇은 종이가 팔락거리며 넘어가고― 시간이 거꾸로 되감긴다.
얼마나 잘 사나 보자, 이기적인 놈··· 그렇게 시작한 페르마의 전화는 막힘없이 잘 나가다가 이 말로 끝을 맺는다― 르네 데카르트가 죽었어. 전화가 끊기기 전, 의례적인 인사는 없다.
앤의 장례식,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말브랑슈가 다급하게 들어온다. 페르마는 바닥에 널브러진 제 겉옷을 거친 손짓으로 주워 담는다. 우울한 표정의 에드워드 콘웨이 자작이 조문객들을 맞는다.
다채로운 울음소리, 흐느끼는 소리, 훌쩍이는 소리― 페르마는 빈손으로 펜을 돌리는 시늉을 하고. 벤치 끄트머리에 주저앉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던 르네 데카르트는 이내 실성한 듯 허탈하게 웃기 시작한다. 아침을 지나 새벽을 넘어 한밤중이 되어서야 문자 한 통이 도착한다― 벤 스피노자의 부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오른편의 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르네 데카르트가 있다. 곧 오른편의 문을 통해 달려 나온 들것에는 호흡기를 낀 르네 데카르트의 딸이 누워 있다. 르네의 동료가 그의 옆자리에 서고, 동료의 손에 들려 있던 수술 기구들이 르네의 손으로 옮겨 간다. 나올 때처럼 다급한 분위기로, 르네의 딸을 둘러싼 사람들이 왼편으로 퇴장한다.
장례식장 입구 근처에 놓인 화환 하나를 배경으로 오가는, 웃기지도 않은 농담들. 아하하, 그거 말 되네··· 원래 천재는 그런 녀석들이잖아! 이상한 데서만 빠르고 난리야··· 그런 농담에도, 페르마와 아르노의 표정은 좋지 않다. 고개를 돌리고 있던 말브랑슈는 슬픈 눈으로 블레즈 파스칼의 사진으로 시선을 옮기며 뭐라 할 말이 있는 듯이 입을 달싹거린다. 페르마가 뭐라고 혼자 조용히 중얼거리는 소리.
소음에 가까운 울부짖음이 어둑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왜 상복을 입고 있어? 뭐가 미안한 건데··· 우리 아들은 어디 있어? 우리 헤니지는··· 콘웨이 자작은 지친 기색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이불을 그러쥐고 있던 앤의 손이 남편에게 뻗어지지만, 차마 닿지는 못한다.
해맑은 웃음소리와 함께, 르네 데카르트는 음료수가 찰랑거리는 잔을 들어 보인다.
자, 우리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하여··· 건배!
있지, 라이.
사람의 감정은 알 수 없는 순간에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휙 돌아서 버려서, 오늘은 괜찮겠지, 하고 내일을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게 돼··· 그러니까 잡을 수 있을 때 잡아둬야 해.영원히 떠나버리기 전에 말이야.
어떤 남자가 있었다.
그는 아주 똑똑한 이였는데
그 능력에 걸맞게, 그는 항상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졸업을 거친 이후로 주위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고 새로운 인연들이 생겼다.
그 옛날에 같은 반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였던 인연과는 거리가 제법 멀어졌다.
이 길을 걷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그게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인연의 속성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그렇게 희미해지는 인연도 있는 거라고.
어쩌면 그는 친구들이 그에 관해 갖고 있는 인식처럼, 정말로 매정한 인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구들이 미처 보지 못한 무대의 뒤편에서, 그는
새벽 비행기를 타고 찾아와 아이를 잃은 어머니를 위로했다.
아주 늦은 밤에도 정장을 멀끔히 차려입고 피곤한 얼굴로 나타났다.
딸을 잃고 방구석에서 나오지 않는 아버지를 끌어내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
어느 여관에서 홀로 떠난 친구의 장례를 알아보며 그의 명복을 빌었다.
친구의 부탁으로 빛바랜 아기 옷을 받아서 평생을 소중히 간직했다.
전화를 받고 원망을 감당하고 화환을 보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모든 것은 비합리성의 영역에 속하는 듯했다.
아직 잡을 수 있다고 느낀 시점에서 망설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도,
결국은 모두가 그보다 앞서 영원히 떠나버렸으니.
시야가 가장자리부터 점멸하고 세상이 사방으로 흔들린다.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 마지막으로 말브랑슈의 목소리가 들린다.수고 많았어, 라이.
숨소리조차 멎은 방, 말브랑슈는 소리 없이 성경을 덮고 두 손을 모았다.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끝까지 죄인이라 불리었던 이 미련한 벗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