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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피(@xssthedream)님 썰타래 팬 창작
원본 링크: https://x.com/xssthedream/status/2003005978275708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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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죽음은 아마 그렇게까지 슬픈 사건은 아닐 것이다.
네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해 보자. 오래된 여관의 계단에서는 나무판자가 삐걱대는 소리. 꼭대기 층, 다락방에 다다라 문을 열면 방 안에 가득찬 먼지가 훅 끼쳐온다. 책상 위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수공예 재료들 위로 또 소복이 쌓인 먼지. 낡은 방과 비슷한 색조의 책장에는 한동안 누구도 손대지 않은 책들 틈새로 어느 해의 학교 신문 9월호가 대충 접힌 채로 꽂혀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 비스듬히 자리한, 색 바랜 노트 한 권. 그게 네 삶을 담은 책일 것이다. 집어 들면서도 표지가 떨어져 나갈까 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그런 책.
이야기는 바뤼흐 스피노자란 인물의 배경을 개괄하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누구나 알 법한 이야기의 파편을 뭉뚱그려서 뿌려 놓은 조잡한 단상이다. 너의 가장 친한 친구들도, 네 이름만 간신히 들어본 사람들도 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량으로 따지면 별 대단한 차이는 없다. 아마도 생전의 네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성향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도입부를 보고 실망하는 의견도 있을지 모르겠다. 고작 이것만 가지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이해하란 말인가? 하지만 의외로, 정말 그것만 가지고도 네 삶의 흐름을 독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차피 페이지가 조금만 넘어가도 더 이상은 등장하지 않을 정보들이다. 네 어릴 적의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 친하게 지내던 옆집 이웃부터 유년 시절의 친구와 가족 그리고 바뤼흐 스피노자까지― 모든 것이 가라앉고 남은 건 방에 틀어박혀 이런저런 책을 홀로 탐독하던 시간들뿐.
그 이후의 너는,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안의 너를 설명할 만한 말들은, 어떠한 까다로운 문법도 난해한 통사도 없이 간결한 표현들로―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익살맞게, 그렇게 짜인 한 줄 한 줄이 쌓여서 페이지가 차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넘어가고 넘어가다 보면 명쾌하고 활달한 문장들 사이에서 네가 겪은 지난한 세월을 보게 된다. 행간―자간에 숨어든 비관과 유머의 이면에 비치는 자조. 어떨 때는 냉소적이고 가끔은 가혹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러나 딱 거기까지뿐이다. 너는 절대 지독한 무력감 속으로 침잠하지는 않았으니까)
한눈에 보기 쉽게끔 좌표평면 위에 펼쳐보자면 급격한 하강 곡선이 여러 번, 그에 비하면 완만하고 미미한 상승··· 네 삶, 그 자체의 고귀함과는 별개로 그 고단함만을 계산에 넣었을 때는··· 사실상 다음날 바로 0으로 떨어진다 해도, 추락이란 표현을 쓰기엔 겸연쩍을 만큼 소박한 양수들로 이루어진 삶. 괜찮아질 거야, 내년에는 더 좋은 일이, 그런 말로 포장해 봤자 사실은 알고 있다. 보편적인 괜찮음으로 판단될 수 있는 역치까지 끌어올리려면 네 삶에는 얼마나 많은 덧셈이 필요한지. 그런 상승곡선도 어느 정도의 기반이 있어야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요행에 가까운 행운을 기대하는 건 지나친 낙관이다. 행운의 작동 원리는 원래 그렇게도 비합리적이다··· 그러니 자연스러운 전개에 따르면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하강, 그리고 끝은 평온하게도.
갑작스러운 반전 대신 개연성을 갖춘, 고요하고 평화로운 결말. 다소 심심하다는 평은 있을지라도, 적어도 억지라는 혹평은 듣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갑자기 괜찮아지는 방향으로 틀어버린다면 그쪽이 더 억지겠지.
이야기의 완성도만 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결국 네 죽음은 그렇게까지 슬프거나 놀라운 사건은 아니다.
죽음이란 원래 문학 속 비극적 장치로 쉽게 남용되곤 하지 않는가. 살아있던 사람인데 지금은 죽어서 세상에 없답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답니다··· 그래서? 어차피 지겹도록 붙어 다니던 학창 시절을 지나면 앞으로 살면서 겪을 만남의 횟수는 그렇게까지 많지도 않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는 법이라. 그래도 살아 있었을 때 더 잘해줄걸, 더 자주 만날 걸··· 그런 건 언제나 죽고 나서 깨닫는 일이다. 이제 깨달았으니 그를 살려주세요! 저런, 근데 남의 죽음은 네 자기반성을 위한 서사적 장치가 아니란다. 깨달음이란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으나 이러한 종류의 깨달음은 얻어봤자 더 나아갈 데도 없으니, 쓸데로만 따지면 아무짝에도 없는 셈이다. 그러니 실은 누가 죽었다고 해서 꼭 슬플 이유도 없다. 그래도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거기에 얼마나 강하게 휘둘리는지는 알고 있으니, 슬퍼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감정에 너무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응, 왜?
혼자 보는 일기라도 딱딱하게 쓸 수 있는 거잖아.
에이, 아무래도 글 쓰는 스타일이야 많이 바뀌지··· 아직도 내가 고등학생인 줄 알아?
미안, 미안. 좀 낯설어도···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고 나도 많이 변했는걸.
그래도 너랑 이야기할 때만은 옛날처럼 철없이 말해도 되니까 좋네.
응? 아냐··· 괜찮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헷갈리지는 않을 거야.
가끔은 괜찮잖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라이가 보면 또 뭐라 하겠지만.
오래된 여관 계단의 나무판자 삐걱대는 소리
꼭대기 층의 다락방 문
방 안에 가득한 먼지
낡은 책장과 어느 해의 학교 신문. [학과 폐지 안건에 관한―] 하단의 사설 제목을 반쯤 가린 채 비스듬히 누워 있는 색 바랜 노트.
정리된 수공예 재료들 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먼지. 이건 도대체 언제 정리할 셈인 거야. 쓸 것도 아니면서. 어느 날의 라이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음, 언젠가는 하지 않을까? 사실은 알고 있잖아, 언젠가라는 말로 맺은 약속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지. 언젠가 언젠가 언젠가― 언젠가는 꼭 네 방을 정리할게. 언젠가는 꼭 널 되찾아서 돌려놔 줄게. 언젠가는 극복할게. 언젠가는, 보고 싶다는 말 더 이상 안 할게. 난간 끝에 몰릴 때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한 발짝이라도 헛디디면 추락하는 상황에서까지 반걸음을 더 뒤로 물리며, 뒤로 떨어지면 강물. 차가운 강물. 먹구름으로 뒤덮인 헤이그의 하늘에서는 비가 톡톡톡― 이제는 정말로 끝낼 시간이야.
그러니까, 늘 고마운 마음뿐인 내 소중한 친구에게.
이제 진짜 괜찮아. 고마워, 잘 가.'순철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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