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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는 누워 있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책상에 엎드려서도 잘 자곤 했지만, 누워서 뒹굴거리는 것만큼 달콤하지는 않았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한여름이 아닌 이상, 이불은 두꺼울수록 좋았다. 자고로 이불이란 파묻혔을 때 푹신함이 느껴지는 게 제일이다. 편안한 자세와 푹신한 이불. 그 정도만 해도 행복하긴 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안고 잘 만한 베개가 있으면 딱이겠다. 아무래도 베고 자는 것보다야 더 커야 적당할 것이다. 웬만한 사람 키쯤까지 길쭉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안고 있을 때 얼마나 편안한가, 얼마나 안심이 되는가··· 뭐 대충 그런 숙면 철학이다. 위의 조건이 다 갖춰진 상태라면, 그는 그대로 열두 시간도 더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을 자신이 있었다. 굳이 열두 시간이란 한계를 둔 것도 인간에게 필수적인 생리적 활동 때문이고, 화장실은 가야지 그치. 그래도 자는 걸 우선하느라 먹고 마시는 데 소홀하다면 그런 활동도 줄어들 테니 더 오래 누워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위험한 생각이다. 아직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그냥 정리하자면, 르네 데카르트는 그 정도로 누워 있는 것을 좋아했다.
앞서 말한 열두 시간의 절반까지도 안 되었을 것이다. 딱히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슬슬 답답한데, 따위의 사치스러운 생각이 떠오른 것은. 약간의 답답함을 느낄 뿐, 일어나고 싶은 것은 아니었기에 살짝 뒤척거리며 자세를 바꿨다. 웅크려 있던 팔다리를 펴고, 얼굴은 베개에 조금 더 파묻히는 모양새다.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드는데, 어쩐지 답답함이 시원하게 가시지는 않았다.
새벽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게 하듯, 손을 침대 바깥쪽으로 더듬어 핸드폰을 찾았다. 간밤에 온 메시지가 제법 있는 걸 보니 슬슬 번호를 바꿀 때가 된 듯싶다. 메시지창을 대강 넘기며 눈에 띄는 대로 즐겨찾기에 추가해 놓았다. 이건 번호 바꾸면서 메르헨한테 넘겨야지. 우리 반 애들 연락처는 빼고··· 문자를 자주 주고받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종종 눈에 띄는 익숙한 이름들이 스쳐 지나갔다. 대체로는 보기만 하고 답장하는 걸 잊은 상태였다. 언제 와, 기다리고 있어, 푹 쉬어, 많이 아파? 괜찮아? 결석이 잦은 반장에게 올 법한 문자들이, 어디야, 르네, 지금 갈게, 문득 눈에 들어온 그 메시지에도 보낸 답장은 따로 없었다.
르네의 핸드폰은 메시지창 맨 위의 이름을 길게 누르면 바로 통화 버튼이 뜨게 되어 있다. 그날의 그는 아마 답장을 보내는 대신, 한 손가락으로 다 가려지는 그 짧은 애칭을 손으로 꾹 눌렀을 것이다. 핸드폰을 귀에 댔을 때는, 짧은 문자를 음성으로 그대로 옮긴 듯한 어디야, 보다 더 크게 들려오던 시원한 빗소리.
그런 기억들을 떠올릴수록 드는 생각이, 정말로 이건 사치스러운 불만임이 틀림없다, 슬슬 답답하다― 는 것은. 입 밖으로 꺼내 놓으면 더 선명하게 다가올 사실이다. 그러니 괜히 뒤척거려 보고 자세도 바꿔 보고 하는 것이건만 뒤에서는 미동도 없다. 르네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할 만큼 깊게 잠들었는지. 르네는 끝내 귀찮은 말하기의 과정을 감수하려 입을 연다. 벤, 이제 놔줘. 잠깐의 공백 끝에 응, 하고 들려오는 대답은 방금 잠에서 깬 사람 목소리라기엔 지나치게 또렷하고 맑다. 어깨에 기대 있던 묵직함이 사라지고 옆구리를 감싸고 누르던 팔의 존재감도 물러간다. 움직이면서 목덜미에 머리카락이 간질거리나 싶더니 무언가 따뜻한 것이 잠깐 닿았다가 순식간에 멀어진다. 흔히 그런 접촉에 동반되는 낯간지러운 소리도 없이, 꼭 실수로 그런 것처럼.
실수라고 포장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음을 너도나도 다 아는데. 문을 닫고 나온 르네 데카르트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 내린 직후의 밤공기가 축축하고 상쾌하다. 오늘도 어쩐지, 관심도 없는 감정의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걸 배워버린 것 같다. 뭐든 알아 두면 쓸데는 있겠지만 따로 정리해 둘 만큼의 관심은 역시 없고. 르네는 알게 된 사실을 그냥 기억 속에 묻어 두기로 한다. 정말로 알 필요 없는 거라면 알아서 잊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