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꿈은 어느 날 아무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그 꿈에서 라이프니츠는 어떤 방 안에 있었다. 처음 보는 방이었지만 그곳은 분명 그의 방이었다. 작지만 아늑한 공간에서, 라이프니츠는 낡은 목조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특이한 점은 그와 같은 방 안에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것이다. 거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라이프니츠와 달리, ‘그’는 앉기도 귀찮다는 듯 방바닥에 되는대로 드러누워 있거나 했다. 간신히 귀에 거슬리지 않는 수준의 게임 소리가 끊기지 않고 들려왔다. 그는 누운 채로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썩 깨끗하지도 않은 방바닥에 새하얀 머리카락을 마구 비비적대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누구시죠? 하고 라이프니츠가 묻는 말에, ‘그’는 핸드폰에서 눈길도 떼지 않고 무심한 어조로, 나잖아, 했다. 라이프니츠는 그 순간 제 표정이 얼마나 바보 같아 보일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아, 아 그랬지. 너였는데. 내 정신 좀 봐··· 그 영양가 없는 대화를 해치우고 나면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당초 계획한 일의 절반쯤이나 겨우 마쳤을 때쯤이면 불현듯 꿈에서 깨어나고, 라이프니츠는 꿈속의 방에 드러누워 있었던 남자가 옛 리케이온 재학 시절의 아이작 뉴턴임을 깨닫는다. 리케이온에 다녔던 3년 중에서도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1학년 때의 그 아이작 뉴턴이다.
뉴턴이 학회에서 발표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게 그때쯤이다. 연구자가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뿐이니 보통은 소식이랄 것까지도 아니었지만, 그게 뉴턴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학계가 좁으니 당연히 자주 마주치겠거니 생각한 것과 달리, 아이작 뉴턴의 모습은 의외로 졸업 이후 한 번 보는 일도 쉽지 않았으니까. ···생각해 보면 의외랄 것까진 없나. 뉴턴이라면 남의 발표를 일일이 들으러 올 것 같지도 않고, 남들 앞에 선보일 목적으로 제 연구 결과를 정성스럽게 가꾸는 이미지도 어울리지 않는 게 사실이라서.
물론 그렇게 생각한 게 라이프니츠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이작 뉴턴이라는 이름은 대충 이런 느낌으로 분위기를 떠들썩하게 달구었다: 리케이온 졸업 이후로 한 번도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않았던 천재 뉴턴이 몇 년 만에 학회 발표를 준비했다면, 그건 대체 얼마나 엄청난 걸 갖고 오려는 걸까?
그게 무엇이든, 그건 세상을 놀라게 할 결과물인 게 분명했다. 양일간으로 기획된 학회 측에서도 그 점을 의식했는지, 둘째 날 마지막 순서로 기획된 뉴턴의 발표를 메인으로 잡고 학회 포스터를 만들었다. 그런 주제에 포스터가 다 뽑혀서 돌려질 때까지 뉴턴의 발표 주제는 혼자 공개되지도 않은 채였다.
궁금하면 와서 확인하라는 건가. 라이프니츠는 학회 홍보 메일에 링크되어 있던 참가 신청 폼에 이름을 적어 넣으면서 생각했다. 학계가 무슨 시장 바닥도 아니고 장사 한번 더럽게도 잘하는 놈들.
그날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어쩐지 현실에서 가지고 있었던 인식이 그대로 이어졌다. 낯선 자기 방 안, 책상 앞에 앉은 라이프니츠는 이제 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알았다. 지난 꿈과 같은 모습의 아이작 뉴턴이 라이프니츠를 등지고 옆으로 돌아누운 채 핸드폰을 두들기고 있었다.
라이프니츠는 산처럼 쌓인 책들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기 발이 놓인 곳과 같은 높이에 위치한 뉴턴의 머리를 내려다보면서도 그보다 위에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대신에 라이프니츠는 자세를 낮추어 조용히 그 옆에 누웠다. 누운 채로 그와 눈을 마주 볼 수 있도록. 라이프니츠는 뉴턴을 보았고 뉴턴은 제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그놈의 게임에 어찌나 집중하고 있는지 눈도 깜빡이지 않는 것 같았다. 라이프니츠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눈 한 번만 깜빡여주면 나한테 그때 일 조금이라도 미안해하는 걸로 알게.
꿈속에서 생각해 봐도 한없이 유치한 공방이었다. 아마 그는 그렇게 엎드려 절이나마 받고 꿈에서 깨어버릴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뉴턴은 여전히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쥔 채로, 다른 한 손으로는 언제부터 들고 있었는지 웬 바늘을 꺼내서 자기 눈에 찔러넣었다. 꽂힌 바늘이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눈은 깜빡여지지 않았다.
꿈에서 깬 라이프니츠는 제 허무맹랑한 상상력을 향해 조소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바늘로 제 눈을 찌른다는 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짓인지. 그것은 어지간히 미친 인간이 아니면 안 할 것 같은 행동으로 보였고 따라서 정확히 아이작 뉴턴이 할 법한 일로 생각되기는 했다. 조금 나중의 일이지만 진짜로 뉴턴이 제 눈에 바늘을 찔렀다는 이야기가 일종의 가십처럼 들려왔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한 번씩 에이 설마, 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오직 라이프니츠 혼자만이 듣자마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것 같더라.
그때 그런 식으로 아이작 뉴턴의 소식을 들었을 때만큼 안심이 되었던 적은 사는 동안을 통틀어 봐도 그리 많지 않다. 그에 대한 좋고 나쁨 따위의 가치 판단 이전에 톡 쏘듯이 들이닥치는, 참 한결같구나― 하는 이름표를 단 중독적인 유쾌함이었다.
결과적으로 학회 첫째 날이 다 끝날 때까지도 뉴턴의 발표 주제가 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학회는 다음 날까지 그대로 진행되었다. 당연하게도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둘째 날의 마지막 발표였다. 저명한 석학들이 자리마다 그득한 홀에서, 단상 앞에 선 뉴턴은 빈말로도 우수하다고는 못할 태도로 발표를 해나갔다. 준비된 발표 자료가 QR코드로 배포되었지만, 역시 남들을 조금이라도 이해시킬 의지라곤 있지도 않아 보이는 자료였다.
곳곳에서 골머리를 썩는 소리가 분명 들렸을 것임에도, 불량한 발표자는 여전히 세상 그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고 바라지 않았던 연구를 태연하게 발표했다. 그가 천재란 이름표를 굳건히 달고 있는 이유는 분명 그래서일 것이다. 그러니까 넌 천재는 될 수 없는 거지. 세상이 원하는 인재의 전형이잖아. 너 같은 놈을 꼰대들이 바라지 않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졸업 전 그와의 마지막 대화. 그 어조에는 좋은 말의 낌새가 전혀 없었지만, 딱히 비꼼의 기색이 묻어나지도 않았었다.
“네, 저 그럼 발표 여기까지 하고. 이제 질의응답 시간이죠? 질문 있으면 자유롭게 주세요.”
생각이 잠시 별세계로 흐르는 사이에 발표가 끝났던지,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울렸다. 소리의 여음이 잦아들며 질의응답 시간에 흔히 찾아오곤 하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 상태로 십 초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뉴턴의 나른한 목소리가 만사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질문 없는 걸로 알고···
“···거기 마이크 좀 넘겨주세요.”
라이프니츠는 아이패드에 줄줄이 적어둔 질문거리를 힐끔거리며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끝까지 집중했더라면 질문거리가 두 배는 더 나왔을 텐데. 10년 전의 라이프니츠는 완벽하게 패배했고 아마 오늘 이 자리에서도 결정될 승패랄 게 있다면 또 패배할 것이다. 너도 이렇게 한결같은데 나라고 뭐 얼마나 변했으려고.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입니다. 흥미로운 발표 잘 들었습니다. 질문이 조금 많은데, 시간 괜찮을까요?”
―
눈 깜빡이기는 영화 <박쥐> 오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