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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폐지 안건에 관한 사설: 수리과 2-A 르네 데카르트를 중심으로순철논 2025. 9. 10. 22:45
학과 폐지 안건에 관한 사설: 수리과 2-A 르네 데카르트를 중심으로
혹자는 아직 미성년의 나이에 불과한 이를 중심 삼아 학술적인 성격의 글을 쓰는 데 못마땅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 물론 성급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틀린 행위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시대에 르네 데카르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곧 없어질 것이 자명함을 생각해 보라. 우리가 수학하는 바가 후학에게로 무사히 이어지는 한, 후일의 르네 데카르트에게 쏟아질 무수한 찬사와 반론과 비판― 그 모든 종류의 관여에 마침표가 찍히는 것을 보지 못할 확률이 높음을 고려한다면, 차라리 그 첫머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것은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학자로서의 당연한 욕심이리라.
그러나 내가 그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첫 사설의 목적이 그를 위함이 아님은 안타까운 일이다. 감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논쟁이 많은 안건을 이유로 그의 이름을 거론하고 싶지는 않으나, 현 상황의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르네 데카르트의 존재를 끌어오는 일이 불가피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리케이온이라는 공간 내에서 르네 데카르트에게 붙일 수 있는 수식어 중 가장 공적 영역에서 큰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단연 ‘수석’일 것이다. 일상에서는 흔히 천재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는 하나, 그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임에도 불구하고 어휘의 성격 자체가 주관적인 탓에 특정한 효력을 발생시키지는 않는다. 그에 반해, 르네 데카르트가 얻은 수석이란 명패는 그에게 다양한 종류의 특혜를 제공하는 데 누구도 불만을 느끼지 못할 만큼이나 매력적이다. 당연히 일반적인 다른 학생들에 비한다면, 르네 데카르트의 발언에 그만큼의 무게가 실리는 현상은 말할 것도 없다.
제재를 받지 않는 회색지대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낙제생 차별 대우를 차치하고서라도, 리케이온 학칙 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엘리트주의는 지금껏 적지 않은 수의 구성원에 의해 지적받아 왔다. 그러나 수리과라는 특수공간에서 나타나는 엘리트주의는 그보다 명백히 더 극심한 수준이다. 절차상 일정 석차 내에 포함되는 학생들만이 지원할 수 있으며 따로 시험이라는 관문을 거쳐야만 한다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르네 데카르트를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러한 결과의 한 단면만을 보고서, 이 사태의 원인으로 여기는 것을 넘어 르네 데카르트라는 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앞서 말한 특혜들이 르네 데카르트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수리과 내부의 엘리트주의적 분위기를 심화시켜 왔음은 무리한 추측이 아니다. 학과 폐지 안건에서 제시하는 논의가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타당함에 동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점이기도 하다. 다만 그러한 문제의 해결책이 한 학과의 완전 폐지라는 급진성을 띤 방안인 데는 견해가 갈릴 것이다. 앞서 성급함이 반드시 오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을 언급했으나, 체계의 변혁에 있어 성급함이란 종종 적지 않은 피해를 수반하는 게 당연한 이치이다.
학과 폐지 안건에 관한 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기에 넘어간다. 중요한 것은 수리과의 폐쇄성이 극단에 치달았다는 것이며, 한 집단의 폐쇄성이 커질수록 그에 유의미한 수준의 공격을 성공시키는 일은 요원해져 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수석인 르네 데카르트다. 르네 데카르트가 수리과의 일원으로서 건재한 한, 수리과의 폐지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수리과 내의 엘리트주의 심화 현상에 있어서는 르네 데카르트의 비중이 적지 않으나, 반대로 수리과를 포괄하는 리케이온이라는 공간 내에서 엘리트주의로 인해 가장 공고히 보호받고 있는 대상 또한 그 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은 르네 데카르트를 향한 간섭을 포기하고 그를 제외한 패를 들추는 것뿐이다. 그 패가 르네 데카르트의 존재를 대체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그 견고한 성채에 금이라도 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 과정에서 우려되는 것은 르네 데카르트를 둘러싼 엘리트주의라는 장벽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다른 학생들(특히, 그가 낙제생이라면 더더욱)이 무분별하게 피해를 보는 일이다. 수리과를― 즉, 르네 데카르트를 목표로 벌인 폭정이나 다름없음에도 정작 그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 상황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이 글은 르네 데카르트를 중심으로 하고 있음에도 그 본인이 읽는 상황을 상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안건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고 있는 르네 데카르트가 이러한 종류의 사설을 읽을 이유는 없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르네 데카르트 본인이 아니라면, 이 글의 표면적인 목적은 이미 달성한 셈이다. 당신의 신변을 지키는 데 주의를 기울이라는 일종의 경고문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현재 활발하게 논의 중인 사항이므로 추후 수정 및 보충 예정.그리고 늘 미안한 마음뿐인 내 소중한 친구에게,
언젠가는 온전히 너를 위한 논지를 전개하는 미래를 약속하며. B.d.Spino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