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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니츠의 시점에서 보는 데카르트
    순철논 2025. 9. 13. 22:25


     솔직히 말하자면···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의 생각은 대체로 다 이렇게 시작하는 편이다. 솔직히,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평소 사람들을 대할 때 영 솔직하지 못한 인간임을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정말로, 지금 내가 하는 말에 관해 백 퍼센트 솔직해. 그런 말을 구태여 붙이지 않는다면― 실은, 그런 말을 붙였을 때조차도― 사람들은 그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서론이 길었다. 역시 솔직하게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무튼, 솔직히 말하자면··· 최소한 리케이온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천재란 이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똑똑한 사람? 그런 놈들은 여기 널렸다. 애초에 살면서 수재 소리 못 들어본 사람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을 리 없으니까.

     똑똑한 것만으로는 안 된다. 천재란 자고로, 미쳐 있어야 한다.

     그저 그런 우스갯소리만으로는 안 된다. 일례로― 너 뭐야, 미쳤어? 응, 넌 정말 미친놈이구나! 미친 소리 하지 마. 미친, 하하하··· 그런 게 아니야. 정말로 미친 사람을 본 적이 있어? 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거야.

     솔직히 말할게. 너는 내가 본 중에 최고로, 미친 사람이야··· 르네 데카르트.





     “있지, 나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다시 세워보고 싶어.”

     언뜻 듣기에, 그것은 ‘미적분’의 개념과 비슷하게 들렸다. 극한까지 잘게 쪼개고, 붙인다··· 애들도 알아먹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런 식이다. 다만, 데카르트가 이야기하는 그것은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무너뜨리고, 세운다··· 그러니까, 무엇을?

     “음~ 애매한데. 굳이 말하자면··· 그냥 모든 것? 세상 사람들이 진짜라고 믿는 모든 것.”

     데카르트는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똑같이 부순다는 행위의 대상이 될지라도, 손으로 대강 쌓은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과 거대한 건물이 무너지는 것은 그림부터가 다를 테다.

     “만약에, 우리가 믿어온 것들이 진짜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 긴 시간을 속아온 거잖아.”

     그리고 그중에서도 아주 오랜 시간을, 의심하지 말라는 계명 하에 쌓아 올려진 견고한 성채. 인간에게 있어 그렇게 오랫동안 믿음의 대상으로 군림해 온 존재는 유일무이하지 않은가.

     “어차피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다면, 아예 하나도 남김없이 무너뜨리는 거야. 그리고~ 의심하고 또 의심해서, 정말 조금이라도 의심할 여지가 생길 수 있다면, 그건 보류! 그렇게 완전무결한 진실, 진리로만 다시 천천히, 처음부터 쌓아 올려 나갈 수 있다면··· 아마 끔찍하도록 오래 걸리겠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무너뜨리기 전보다 훨씬 낮은 탑에서 살아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그건,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으로 직접 쌓은 탑이야!”

     그리하여 모든 ‘의심가능한 사실’이 걸러지고 남은 단 하나의 결론― 나는 생각하는 존재이다.

     그때 데카르트가 꿈꾼 것은 온 세상을 미분하는 일이었다.





     꿈을 꾸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 두 명이 짝지은 연인, 서너 명이 함께 걷고 있는 친구 혹은 가족들. 무대의 왼쪽에서 등장해 오른쪽으로 들어간다. 오른쪽에서 등장해 왼쪽으로 들어간다. 누구 하나 평화로워 보이지 않는 이가 없다. 연극의 제목은 ‘평화로운 시대’. 각본가 불명 연출가 불명. 단지 사람들은 그를 신이라 불렀다.

     무대의 중앙에 환한 조명이 내리쬔다. 조명을 받고 선 배우가 말한다.

     배   우  : 내 이름은 A입니다.

     그 순간, 그 배우는 A가 된다. 그가 그 말을 하기 전에 무엇으로 정의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이 무대에서 A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것은 무대를 내려갈 때까지 절대적인 진리로 인식될 것이다.

     

     배   우  : 내가 있는 장소는 B입니다.

     그리고 그 무대는 그 한마디로 인해 B라는 공간이 되었다. 관객들은 그곳이 B임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누구도 그 배우가 A이며 그 장소가 B라는 데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 무대를 관람하는 관객들 사이를 흐르는 규칙이다. 깨지는 순간 연극은 파괴되고 행복을 앗아가는 그런 규칙.

     그러나 어두운 관객석에서,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앳된 목소리가 물었다.

     “그곳이 B인지는 어떻게 알죠?”

     그것을 왜 의심해야 하지? 모두가 이곳을 B라 인식하고 있다. 그것이 B인지 아닌지, 생각하면 무엇이 달라지지? 하지만 그 목소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당신이 정말 A라고 어떻게 확신하죠?”

     그 순간 배우는 둘로 쪼개진다. 둘로, 넷으로, 여덟으로, 열여섯으로··· 흔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잘게 쪼개진다. 곧이어 다른 배우들도 모두 쪼개진다. 무대장치가, 무대가, 그곳의 공기가, 관객들이, 모두 쪼개지고 생각하는 존재인 르네 데카르트만이 그곳에 홀로 남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잘게 쪼개져 가루가 되어버린 것들이 서로 결합하며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한다. 물이 수소와 산소로 나누어지듯. ···그럼, 기왕 쪼개진 김에 다른 거랑 한번 붙여보면 안 돼? 아는 방식으로 붙여봤자 아는 물질이 다시 만들어질 뿐인데. 궁금하지 않아? 수소랑 다른 물질을 결합하면 뭐가 나올지. 산소랑 또 다른 물질을 결합하면 뭐가 될지! 그렇게 수백 수천 수만 수억 가지의 경우의 수가 만들어지고. 과학이 발전하고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하며 세계의 패권이 뒤집어지고···

     모든 것이 재정립되었다. 재조립된 무대 위, 재조립된 무대장치. 재조립된 배우들이 연기를 계속한다. 예전과 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배우들의 표정에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하며 전에 비해서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절대적인 믿음이 사라진 무대··· 그러나 각본가도 인간이며 연출가도 인간인 새로운 극이 시작되고,

     그리하여 배우는 다시 말한다.

     “내 이름은 A입니다. 내가 있는 장소는 B입니다.”

     그래봤자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파괴된 무대는 다시 고쳐졌으나, 이미 무대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믿지 못하게 되어버린 관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군가가 외친다. 개소리하지 마! 너희는 배역을 부여받은 배우이고, 이곳은 무대가 있는 극장에 불과해. 우리는 극장 밖으로 나갈 거야. 무려 천 년 동안이나 속아서 이곳에 갇혀 있었단 말이야!

     우르르 일어나 암흑 속에서 극장 문을 두드리는 관객들을 지켜보던 데카르트가 말한다.

     “의심 없이 즐겁게 연극을 관람하던 그때가 가끔은 그리워질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나아가려면 무언가는 포기해야 하는 거니까.”

     데카르트의 손이 닿자마자 굳게 닫혀 있던 극장 문이 활짝 열린다. 미지의 세상으로 망설임 없이 걸어 나가는 르네 데카르트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라이프니츠는 잠에서 깨어난다.





     ···솔직히 말하자면, 데카르트.

     네가 세상에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나는 감이 잘 오지 않아.

     세상은 정말 많은 것을 얻을 거야.

     그만큼 잃은 것도 많겠지― 무서운 건, 우리가 잃은 것이 대체 무엇인지 우리 자신도 잘 모른다는 것이고. 아마 우리 세대에서는 알지 못할 거야. 머나먼 후학들이야 알게 될지도 모르지. 어쩌면, 언젠가 올 미래에는··· 도구적 이성과 수학적 이성 말고는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오게 될까.

     누군가가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거짓말쟁이로 몰리겠지.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게 기본이 될 거야. 그런 것 없이 선의로 누군가를 믿어주는 사람은 바보 취급당할 테고.

     세상은 많이 삭막해질지도 몰라.

     르네 데카르트가 활짝 열어버린 근대라는 문― 그 문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지식이 얼마나 많을까?
     그 문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르르 빠져나갈까.
     언젠가, 인류의 기술 발전이 극한에 이른 먼 미래에··· 누군가는 데카르트를 원망하는 사람도 있을까.

     결론도 쓸데없이 길었군― 솔직하게 말하는 건 역시 어렵다.

     

     

     

    -

    르네 데카르트를 보고 걔는 진짜 너무 천재지~ 하고 계속 붐업해주는 사람은 벤이지만,
    라이프니츠가 보는 세기의 천재 데카르트는 그 느낌이 좀 다를 것 같다는 생각
    라이프니츠가 작중에서 보여준 그 까칠해 보이지만 세심하고 꼼꼼한 모습... 그리고 놀라운 통찰력을 고려한다면,
    스피노자가 미처 보지 못한 데카르트의 천재성- 그 이면의 섬뜩함과 후세에 미칠 영향까지도 일부는 예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근데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없습니다
    원래 적폐캐해는 감이고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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